[이 아침에] 살구꽃이 드디어 피었네
이십 년 전 심었던 살구나무에 꽃소식이 없었다. 그나마 그늘이라도 만들어줘 고맙다는 생각에 방치 상태로 뒀었다. 그런데 지난해 초 겨울비에 풍덩 젖더니 처음으로 꽃이 몇 송이 피었다. 그러다 5월에 열린 살구 두 개를 따먹으며 다시 희망으로 나무를 돌보기 시작했다. 거름흙을 사다 붓고 음식 찌꺼기도 거름으로 묻어줬다. 주변에는 고추 모종 서너 그루도 심었다. 상부상조하며 살라면서 날마다 바라보았다. 살구나무는 오래전 길을 걷다가 이웃집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참살구의 맛을 보고는 당장 한그루 사다 심은 것이다. 친정아버지가 심어준 살구나무의 추억을 생각했다. 미국 살구는 나와 친구들의 간식이었던 어린 시절의 살구 맛이 아니었다. 올해도 잦은 비로 우리 집 뜰은 웅덩이마다 물이 넘쳤다. 덕분에 살구나무 가지마다 꽃봉오리가 조랑조랑 맺혀있다. 이제 곧 만발한 꽃을 구경할 것이라며 잔뜩 기대했는데, 주말에 또 비가 내렸다. 해가 떠오르면 예쁜 벌들이 찾아와 열심히 꿀을 나르는데 말이다. 살아오며 내가 두려워하던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그것은 시기심이다. 시기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부와 명예, 직위를 탐하며 시샘을 한다. 그런데 친척끼리도 시샘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나는 나의 내면이 늘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보면 관심이 생기고 그에게서 더 배우려고 노력한다. 슬프게도 세상이 너무 변해 혼자서도 잘 노는 시대가 왔다. 좋은 책과 종이 신문은 멀리하고 소셜미디어로 단순히 흥미로운 것들만 주고받는다. 골치 아픈 이야기들은 관심 밖이다. 생각 없이 세상이 시키는 대로 잘들 따르는 것 같다. 오래전 학창 시절, 내 주변에는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부친이 고급 공무원인 친구들도 몇 명 있었다. 대입 재수생 시설 다녔던 서울의 종로학원 근처에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던 친구 집이 있어 종종 들렀다. 친구의 어머니는 늘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주셨다. 그 친구 집에서 배고프면 밥도 얻어먹고 잠도 자며 신세를 졌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결혼하면서 거의 연락이 끊어졌다. 난 지금도 변하지 않고 그런 우정을 기다리는데 말이다. 나의 부모님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나중에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 아마 내 부모님과 반대의 삶을 산 분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행복이라는 게 항상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은 삶의 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시샘이 난 빗줄기에 살구꽃은 우두둑 떨어졌지만, 그래도 부지런한 벌들 덕분에 조금은 열매를 만들어 주리라. 따듯한 봄날의 추억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선물 받으리라. 최미자 / 수필가이 아침에 살구꽃 이웃집 살구나무 살구나무 가지 오래전 학창